久病床前无孝子.
'긴 병 앞에 효자 없다'는 중국 속담이다. 아무리 효자라도 오랜 기간 부모 병간호를 하다보면 지치고 화를 내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즉 존엄사는 중국에서 금기에 가까웠다. 더 이상 치료행위가 의미 없다고 판단될 만큼 환자 상태가 죽음에 가까웠을 때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다. 의학적 판단 아래 생존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을 거두는 안락사와는 구별된다.

존엄사 도입이 어려운 건 한·중·일 모두 마찬가지였다. 효도를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유교적 문화에서 부모의 목숨을 건지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용인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고 가족들에게 그나마 인간다운 모습을 남긴 채 떠나고 싶은 게 부모 마음. 동북아 특유의 다층적 윤리의식 위에서 존엄사는 논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만 해도 오랜 진통 끝에2018년 2월에서야 연명치료 중단, 즉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오늘날 의사로부터 약물을 얻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는 '조력존엄사법'이 논쟁 대상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지난 7월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광둥성 선전시에서 존엄사를 허용하고 나선 것이다. 선전시는 '선전특구의료행위 규정 개정안'을 도입했는데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 한정해 환자 본인이 작성한 '생존 유언장'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생존 유언장은 멀쩡한 의식이 있을 때 작성해야 한다. 가족 동의는 필수다. 생존 유언장에 환자가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개정된 법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존엄사법이 중국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계기는2011년 덩밍젠 사건이었다. 광저우에서18년간 노모 병수발을 들던 아들 덩밍젠이 어머니에게 살충제를 먹여 숨지게 했다. 고통을 호소하며 죽게 해달라는 노모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폭풍 같은 비난과 옹호가 부딪히고 엉켰다. 그리고 2년 뒤 베이징유언장장려협회가 만들어지면서 생존 유언장 논의가 시작됐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중국에서 존엄사법은 더 이상 미루기 힘든 현안이다. 중국은 지난해 말 현재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14%를 넘어섰다.2035년에는 해당 인구가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거라는 예측도 있다.

가계나 지방정부 모두 노인 의료비 부담이 점점 커진다.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없어 곳곳에서 과잉 진료, 치료가 자행된다. 의료 시설마저 낡고 부족하다. 지난해 4월 말 현재 중국 의료기관 수는102만8000개다. 9만9000개인 한국보다10.4배 많다. 인구가 한국보다 거의30배 많은 데 비해 절대 부족이다. 인구1000명당 의사 수도2.9명으로OECD평균3.4명보다0.5명 적다.

이렇다보니 삶과 죽음의 문턱에 선 노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국은 노인10만명 당 9명이 자살한다. 노인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존엄사를 확장하는 데 걸림돌은 가족이다. 역시 '효'의 문제다. 가족끼리 합의가 잘 안된다. 간쑤성 농부 가오씨는50대에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는데 의사는 집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다. 가오씨와 아들들은 의사 말을 따랐다. 그러나 가오씨의 남동생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수술을 고집했다. 조카들에게는 '효'를 들이댔다. 졸지에 천하의 패륜아가 될 처지에 몰리자 자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오씨 수술은 실패했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죽어갔다. 사망할 때 그의 몸무게는32kg이 줄어 있었다.

양리신 인민대 법대 교수는 관영 매체 중국망에 "생명의 존엄에는 죽음에 대한 존엄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만 바라보며 달려온 중국에서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는 건 많은 걸 의미한다. '웰빙'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서 '웰다잉'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인데 이것은 행복, 삶의 지향점이 단지 돈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된다. 종국에는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는 의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의식과 논의가 중국 공산당 체제와 양립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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